명절마다 고향 완도에 내려가면 바닷바람에 실려 오던 특유의 갯내음, 그리고 마당 가득 빨래 대신 김을 말리던 풍경은 제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었습니다. 그저 밥상 위 흔한 반찬인 줄만 알았던 그 김이 이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검은 반도체'**가 되었다니, 완도 아들인 저로서는 내심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얼떨떨하더군요.
최근 2025년 김 수출액이 11억 3,000만 달러(약 1조 6,407억 원)를 돌파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제 인식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우리 식탁의 조연이었던 김이 글로벌 식품 시장의 '단독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확실한 신호였습니다.
글로벌 시장이 'K-김'에 열광하는 이유

김 수출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배경을 들여다보니 여러 요인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가장 큰 동력은 역시 글로벌 식습관의 변화였습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비건'이나, 가끔 고기를 먹긴 하지만 주로 채식을 즐기는 '플렉시테리언'들에게 김은 그야말로 완벽한 대체 식품인 셈이죠. 조리할 필요도 없이 뜯어서 바로 먹으면 되니까요. 여기서 비건이란 동물성 식품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를 의미하며, 플렉시테리언은 주로 채식을 하되 때때로 육류를 섭취하는 유연한 채식주의자를 뜻합니다. 김은 저칼로리에 풍부한 미네랄과 식이섬유, 식물성 단백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별도의 조리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편의성까지 제공합니다.
제가 직접 해외 온라인 마켓을 둘러봤을 때 놀라웠던 건 김이 더 이상 '아시안 푸드' 코너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미국의 대형 마트에서는 김스낵이 감자칩이나 팝콘과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고, 유럽의 유기농 식품 매장에서는 '슈퍼푸드(Superfood)' 섹션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더군요. 슈퍼푸드란 영양소가 풍부하고 건강에 특히 유익한 효과를 주는 식품을 일컫는 마케팅 용어입니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김 수출은 최근 3년간 매년 20%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출처: 해양수산부). 2022년 6억 5000만 달러에서 시작해 2023년 7억 9300만 달러, 2024년 9억 9700만 달러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마침내 11억 3000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 기세라면 '수출 2조 원' 시대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K-푸드 브랜드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김은 라면, 김치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 이미지로 자리 잡았고, 특히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는 '한국산 김'이라는 원산지 표기 자체가 품질 보증 마크처럼 작용하고 있습니다. 북미와 유럽에서 'Made in Korea'는 김 시장의 샤넬이자 삼성과 같습니다. 미국에 사는 친구 녀석에게 현지 분위기를 물어보니 대답이 가관입니다. **"야, 여기 애들은 김을 밥이랑 먹는 게 아니라 감자칩처럼 간식으로 박스째 사다 먹어!"**라며 현지의 뜨거운 분위기를 전해주었습니다. 현지 마트에서 한국산 김은 다른 나라 제품보다 20~30%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하더군요.
주목할 만한 점은 김이 밀이나 옥수수처럼 국제 선물시장에 편입된 곡물 원자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는 국제 금융 시장의 변동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덜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김을 스낵이나 간편식으로 가공하면 유통 경쟁력이 붙어 단가 기준 부가가치가 크게 높아집니다. 이런 구조적 강점이 김을 K-푸드 수출의 핵심 품목으로 끌어올린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거인들의 전쟁: CJ, 대상, 그리고 오리온의 현지화 전략
주요 식품기업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단순히 김을 보내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현지인의 입맛과 유통망을 직접 공략하는 '현지 밀착형' 경쟁이 치열합니다. CJ제일제당의 경우 비비고 김스낵으로 미국 김스낵 시장의 절반을 꽉 잡고 있습니다. 월마트 매대 한 면이 비비고 김스낵으로 가득 찬 걸 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죠. 김 제품 판매량은 2023년 2981톤에서 2024년 5253톤으로 2년 만에 76% 증가했고, 2024년 기준으로 전체 판매량의 37%를 수출로 달성했습니다.
유럽 시장 공략도 눈에 띕니다. 영국에서는 세인즈버리스를 포함해 400여 개 점포에 입점했고,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500여 개 점포에서 판매 중입니다. 특히 베트남 같은 신흥 시장에서의 성장세가 인상적인데 최근 4년간 김 매출이 5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대상은 현지화 전략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각 나라 입맛에 맞는 조미김을 생산하고 현지 생산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김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섰고, 베트남에서는 연간 700톤 규모의 김을 현지 생산해 김스낵, 조미김, 자반김 등으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대상의 김을 포함한 해조류 가공품 매출액은 2020년 650억 원에서 2024년 1550억 원으로 4년 만에 138% 증가했고, 2025년에는 2004억 원을 기록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산업협회).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건 오리온의 진입입니다. 제과업체가 김 사업에 뛰어든다는 게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초코파이로 다져진 글로벌 스낵 유통망과 마케팅 노하우를 김 제품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 10월 수협중앙회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김스낵 개발과 수출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제 김 산업이 정말 식품 산업의 주류로 편입되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초코파이로 전 세계 유통망을 뚫어본 '스낵 전문가' 오리온이 김 사업에 뛰어든 건 정말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제과 노하우와 김이 만났을 때 생길 시너지가 벌써 기대되거든요.
고부가가치화 경쟁과 성공 전략은
스타트업들도 가세하고 있습니다. '기역이미음'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담아는 튀기지 않고 4번 구워 만든 김스낵으로 이미 10개국에 진출했습니다. 저도 직접 이 제품을 먹어봤는데 기존 튀긴 김스낵과는 달리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더군요. 콜레스테롤과 트랜스지방을 제로로 만든 건강한 스낵이라는 점을 내세운 포지셔닝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고부가가치화 전략의 핵심은 김을 '저가 해조류'가 아닌 '고부가 기능성 식품'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입니다. 김을 스낵, 샐러드 토핑, 간편식 원료 등으로 응용하면서 활용 범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고 단가를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축적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 구분 | 과거 (전통 반찬) | 현재 & 미래 (글로벌 전략 품목) |
| 제품 형태 | 조미김 (밥반찬용) | 김스낵, 샐러드 토핑, 기능성 원료 |
| 주요 타겟 | 국내 | 글로벌 비건 및 건강식 지향 소비자 |
| 핵심 가치 | 저렴한 가격, 대중성 | 고영양, 친환경, 프리미엄 브랜드 |
| 산업 연계 | 전통 수산업 | 바이오, 푸드테크, 스마트 양식 |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검은 반도체'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들이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변동과 해양 환경 악화는 김 양식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원초 생산량 변동성은 가격 급등락으로 이어집니다. 수온이 오르면서 김 양식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더위에도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스마트 양식을 도입하는 게 정말 시급합니다.
어촌의 고령화 문제는 심각합니다. 젊은 피가 수혈될 수 있도록 자동화 기술 투자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저가 경쟁이 아닌 김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식품으로 각인시키는 '브랜드 가치 고도화 마케팅'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김 산업은 이제 단순한 전통 수산업의 하위 분야가 아니라 식품·바이오·친환경 산업과 연결된 전략 산업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김 산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캐느냐'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담아 파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완도의 바닷바람이 키워낸 우리 김이 전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그날까지, 저도 한 명의 '완도 아들'이자 '직장인 투자자'로서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전통적인 인식을 깨고 기술과 마케팅이 결합될 때, 김은 반도체만큼이나 단단한 한국의 수출 기둥이 될 것입니다.
이제 고향 집 식탁에 놓인 김 한 장을 봐도 예전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얇은 김 한 장에 우리 수산업의 미래와 수많은 어민의 땀방울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뭉클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