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지인이 운영하는 철강 관련 중소기업 대표님과 식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며 오랜만에 밝은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발 저가 공세로 국내 철강업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터라, 그 한마디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포스코와 현대제철 같은 대형 철강사들의 실적이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반등이 단순한 경기 회복 덕분인지, 아니면 구조적 변화의 시작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주목한 건 업계가 '해외 현지화'라는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외 현지화 전략이 승부처가 된 이유
K철강 업계가 해외 현지화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려는 게 아닙니다. 요즘 글로벌 철강 시장은 관세와 반덤핑 규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통상 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CBAM이란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을 수입할 때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 유럽연합(EU)이 환경 보호를 명목으로 도입한 사실상의 무역 장벽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한국에서 만들어 해외로 보내는 수출 중심 모델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관련 업계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제는 '시장이 있는 곳에 공장을 짓는' 완결형 현지화가 필수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완결형 현지화란 원료 조달부터 제조, 가공,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현지에서 해결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포스코는 미국 2위 철강기업 클리블랜드클리프스와 협업하며 북미 자동차 강판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고, 인도 1위 철강사 JSW와는 합작 일관 제철소 설립까지 추진 중입니다(출처: 포스코 공식 홈페이지). 현대제철 역시 포스코와 손잡고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8조 5000억 원 규모의 전기로 기반 일관제철소를 짓고 있습니다.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란 고철을 전기로 녹여 철강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기존 고로(용광로) 방식보다 탄소 배출이 적어 친환경 철강 생산에 유리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철강 산업은 전통적으로 국내에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수출하는 방식이 주류였는데, 이제는 아예 공장 자체를 해외로 옮기는 쪽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이게 단기적으로는 투자 부담이 크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가장 확실한 방어막이자 성장 기반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자동차나 에너지 산업처럼 공급망 안정성을 중시하는 분야에서는 현지 생산 여부가 거래 성사의 핵심 조건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 같은 완성차 업체들도 북미 공장에서 현지 생산한 강판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만 해외 현지화가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현지 업체와의 경쟁, 규제 대응, 인력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제가 만나본 업계 관계자들은 "무리한 확장보다는 수익성과 전략적 가치가 검증된 시장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가격 경쟁만으로는 현지 업체를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품질과 기술력을 앞세운 차별화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고부가 강재 추진
K철강의 실적 반등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고부가 가치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했다는 점입니다. 예전처럼 범용 철강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방식으로는 중국의 저가 공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제가 관심 있게 본 건 자동차 강판, 전기 강판, 에너지·인프라용 고급 강재처럼 진입 장벽이 높은 영역에 집중하는 전략입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2조 7332억 원, 영업이익 2192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1%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37.4% 늘었습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철광석과 석탄 가격 하락으로 원가가 줄어든 덕분이기도 하지만, 고부가 제품 비중을 늘린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포스코도 철강 부문 영업이익이 전년 1조 4730억 원에서 약 20% 증가한 1조 7800억 원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고부가 자동차 강판과 전기 강판 판매를 늘리고 판가를 정상화한 결과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변화는 단기 매출보다 장기 경쟁력을 중시한 선택과 집중 전략의 결과라고 봅니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포항제철소를 에너지, 구조용 강재 거점으로, 광양제철소를 자동차, 전기 강판 거점으로 특화하면서 설비 효율화까지 병행하고 있습니다. 생산 기지별 전문화는 원가 구조 개선과 품질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가능하게 합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제조, 첨단 산업 중심으로 철강 내수를 확대하고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중국발 저가 공세도 예전만큼 거세지 않은 것도 긍정적입니다.
탈탄소 전략 추진
동시에 탈탄소 전략도 빼놓을 수 없는 승부처입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과 각국의 환경 규제 강화로 철강 산업의 경쟁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데모플랜트 착공과 광양 전기로 준공 등 탈탄소 설비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수소환원제철(Hydrogen-based Direct Reduced Iron)이란 철광석을 환원시킬 때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제철 기술입니다. 현대제철도 미국 루이지애나 프로젝트를 전기로 기반으로 추진하며 저탄소 강판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다만 리스크도 만만치 않습니다. 산업용 전기 요금이 최근 몇 년 새 70% 안팎 급등하면서 전기로 확대가 전력비 상승으로 이어지는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관세 부담도 증가하고 있고요. 제가 보기엔 탈탄소 전략의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정부와의 협력을 통한 전력 요금 안정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탈탄소 전략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의 핵심 투자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K철강 산업의 핵심 전략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해외 현지화: 관세 장벽 회피 및 현지 공급망 확보
- 고부가 강재 확대: 자동차, 전기 강판 등 고마진 제품 집중
- 탈탄소 투자: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등 친환경 설비 구축
K철강의 실적 반등은 단순한 시황 개선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시작입니다. 제가 직접 업계 분들을 만나보고 느낀 건 이번 반등을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하려면 해외 현지화, 고부가 강재 확대, 탈탄소 기술 개발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철강 시장이 '저가 대량 생산'에서 '저탄소, 고부가 강재' 경쟁으로 재편되는 지금, K철강의 올해는 새로운 성장 국면 진입을 위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해외 현지화의 완성도가 향후 5년, 10년을 좌우할 것으로 봅니다.
